그리스의 문명과 역사
그리스·로마신화로 많이 알려진 그리스는 남유럽과 서아시아에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지중해(Mediterranean Sea)를 동쪽으로는 에게해(Aegean Sea)를 접하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알바니아(Albania), 북마케도니아(the Republic of Northern Macedonia), 불가리아(Bulgaria)와 그리고 동쪽으로는 튀르키예(Republic of Türkiye, 터키)와 국경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공식 명칭은 그리스 공화국 (The Hellenic Republic)이며 수도는 아테네(Athens)입니다.
그리스는 산지가 많은 본토(本土)와 여러 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Ⅰ. 고대 그리스 문명의 발생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부족이 처음으로 그리스 본토(本土)인 펠로폰네소스(Pelopponnesos) 반도(半島)에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3천년에서 기원전 2천년 사이로 추정(推定)됩니다. 곡물 농사(穀物農事)에는 적합하지 않은 자연환경이어서 그리스인들은 모자라는 식료품(食料品)을 수입해야 했으며 이로 인해 오래전부터 항해술(航海術)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이 항해술의 발달은 결국 그리스가 다른 지역에 비해 일찍 문명이 발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 에게문명(B.C2000~B.C1200)
유럽 문명은 지중해와 에게해를 중심으로 하는 에게문명(Aegean civilization)으로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에게문명은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하는 미노아 문명과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중심으로 하는 미케네 문명(Mycenae Civilization)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크레타 문명(B.C2000~B.C1600), 미노아 문명
크레타 문명은 크레타섬에서 성립한 청동기 문명으로 기원전 3000년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스 본토보다 크레타섬에서 문명이 더 먼저 발달하게 된 것은 크레타섬이 먼저 발달한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지리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레타 문명은 미노아 문명(Minoan civilization)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Minos)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미노아 문명은 기원전 2000년경부터 크레타섬에서 전성기를 맞이하였습니다. 크노소스 궁전을 건축하였고, 해상 무역 활동을 통해 오리엔트 문명을 받아들여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본토에서 내려온 아카이아인의 공격과 자연재해(自然災害)에 의하여 멸망하였습니다.
(2)미케네 문명(B.C1600~B.C1100)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해 그리스 본토 남부에는 아카이아인들이 중심이 된 소왕국(小王國)이 건설되었습니다. 미케네·아테네·테베·스파르타 등이 그 주요한 곳입니다. 이들은 기원전 1600년경부터 급속히 힘이 증가해 남쪽 크레타를 대항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미케네가 중심적 존재가 되었으며, 크레타의 붕괴 후 지중해 각 지역과의 교류에 지도적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평화적(平和的)이고 개방적(開放的)인 크레타의 왕궁과 달리 미케네의 왕궁은 침입과 재해(災害)에 대비하기 위해 폐쇄적(閉鎖的)으로 지어졌습니다. 이 미케네는 기원전 1200년경 철제 무기(鐵製武器)를 갖고 침입한 도리스인들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2. 암흑시기(B.C1100~B.C800)
크레타 섬에서 발전한 미노아 문명은 그리스 본토에서 성장한 미케네 세력에 의해 함락(陷落)되었습니다. 미케네인들은 미노아 문명을 받아들여 찬란한 초기 그리스 문화를 이룩하였습니다. 유명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났다고 추정(推定)되는 시기도 바로 이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번성하던 미케네 문명도 기원전 1100년 경에 몰락(沒落)하였습니다. 이를 청동기 시대의 붕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단순히 그리스의 미케네 문명 뿐만 아니라 주위 신왕국(新王國) 등이 한꺼번에 붕괴되었기 때문입니다.
미케네 문명이 몰락한 이후 그리스 지방에는 약 300여 년간의 암흑기(暗黑期)가 도래합니다. 이때 그리스에서 만들어진 유물들은 예전에 비해서 조잡(粗雜)하였고 국가는 형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였습니다. 번성했던 미케네 문자들은 이때 모두 소실(消失)되었고, 지중해권 국가들 사이의 해상 무역도 모두 끊어졌습니다.
3. 아르카익 시기(B.C800~B.C480)
300여 년 동안 지속된 암흑 시대는 기원전 800여 년 경 즈음에 막을 내리고 서투르고 투박한 옛 시대란 의미를 지니는 아르카익(Archaic)시대가 도래합니다. 아르카익 시대는 고졸기(古拙期)라고도 부르는데 기원전480년 페르시아가 제2차로 그리스를 침공할 때까지 이어집니다. 이 시대를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뒤에 나타난 그리스 고전시기(B.C480~B.C323)와 헬레니즘시기(B.C323~A.D31)에 앞서 그리스 문명의 기초를 이루었다는 의미에서 아르카익 시대(B.C800~B.C480)라고 부릅니다.
이 시기에 그리스에는 도시국가 형태인 폴리스(polis)들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 등의 대형 도시들도 이 시기에 형성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성장한 아테네는 처음에는 왕정(王政)으로 출발하였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귀족정(貴族政)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차츰 주위의 도시들에 영향력을 끼치는 강국으로 떠오르게 된 아테네는 무역과 예술을 장려(獎勵)하고 상공업을 발전시켰습니다.
반면에 스파르타는 아테네와는 완전히 다른 도시국가였습니다. 스파르타라는 미케네 문명을 멸망시킨 도리아인들이 세운 도시로 무력(武力)을 숭상하며 군사력을 강화하였습니다.
4. 고전시기(B.C480~B.C323)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그리스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을 때에 동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페르시아(Persia)는 B.C490년(1차), B.C480년(2차), B.C479년(3차) 등 계속적으로 그리스를 공격하였습니다. 이에 그리스는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페르시아의 공격을 막아내었습니다.
페르시아전쟁(B.C 492-479) 후 아테네는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429)시대를 맞아 최대의 전성기(全盛期)를 맞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연극, 철학, 역사, 수사학(修辭學) 등 학문 분야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내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서로 싸우게 되었는데 이 전쟁이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이며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Ⅱ. 이민족 지배하의 그리스(B.C388-AD 1830)
1. 마케도니아의 지배(B.C338-B.C146)
(1)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의 멸망(B.C338년)
그리스 도시국가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전쟁을 벌이는 동안 마케도니아 왕국은 조용히 힘을 길렀고, 국왕 필리포스 2세는 군제개혁(軍制改革)을 통해 마케도니아 왕국을 군사강국(軍士强國)으로 만들었습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서 비록 스파르타가 승리하였지만 B.C371년 레욱트라(Leuctra)전투에서 그리스의 다른 도시국가인 테베에게 지게 되고 테베는 B.C338년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와 벌인 카이로네이아(Chaeroneia)전투에서 패배하여 결국 아테네를 비롯한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마케도니아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그리스는 1830년 독립할 때까지 2000년 세월을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게 되었습니다.
(2)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헬레니즘 문화
필리포스 2세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Alexandros the Great, BC 356~BC 323,알렉산더대왕)은 BC336년 왕위를 물려받아 페르시아 원정(遠征)에 나서서 인더스강까지 이르렀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대제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정복한 도시에 그리스인을 이주시켜 그리스문화를 전파하였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BC323년 바빌론에서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부터 오리엔트 지역에는 그리스와 같은 문화라는 의미의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 헬레니즘 문화시대는 이집트에서 마케도니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가 끝난 B.C30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2. 로마제국의 지배(B.C146-1453)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던 그리스는 B.C 146년부터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를 무력으로 정복(征服)했지만 문화적으로는 그리스 문화가 로마 문화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철학을 공부하고 그리스 문화와 과학을 수용(受容)하여 그리스가 로마 제국의 문화적 중심으로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A.D395년 로마제국 분열 후에는 비잔티움제국이라고도 불리는 동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당시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은 그리스 문명을 보존, 전파시키는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3. 오스만제국의 지배(1453-1830)
동로마제국은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제국의 지배 하에서 이슬람교로의 개종은 자유였으나, 이슬람교도가 되면 지배계층의 특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정교(正敎)의 전통을 지키며 독립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Ⅲ. 그리스의 독립과 근대국가의 형성
그리스는 1821년부터 1829년까지 오스만 제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치른 후 1830년 런던회의에서 국제적으로 독립을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독립 후에도 크림 전쟁(1853∼1856), 발칸 전쟁(1912~1913) 등 잦은 전쟁을 치렀고, 공화정(共和政)과 왕정(王政)이 반복되는 등 정치적으로 혼란을 겪었습니다.
Ⅳ. 세계대전과 그리스
1. 제1차세계대전(1914~1918)
1919년에 그리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불가리아(Bulgaria)로부터 서트라키아를 돌려 받아 현재의 국경을 거의 완성하였습니다.
2. 제2차세계대전(1939~1945)
1939년 알바니아(Albania)를 합병(合倂)한 이탈리아는 그리스를 침공하였습니다. 그러나 영국이 그리스를 지원하면서 이탈리아는 수세(守勢)에 몰리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동맹국을 돕기 위해 독일은 1941년 그리스를 공격하였습니다. 또한 1941년 4월 6일 독일은 이탈리아와 함께 유고슬라비아를 공격하면서 발칸 반도는 전쟁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후 1947년에 그리스는 전쟁에서 패한 이탈리아로부터 로도스섬 등 도데카니소스 제도(Dodecanesus Islands,도데카네스제도)를 돌려 받게 되었습니다.
Ⅴ. 현대사회의 그리스
1. 2차세계대전 이후의 그리스
2차세계대전 후 세계(世界)는 사회주의(社會主義)와 자유주의(自由主義) 간의 대립(對立)이 심한 시대였습니다. 그리스도 마찬가지였는데 1949년 미국은 그리스 정부군(政府軍)을 지원하였으며 이에 그리스 내의 공산당(共産黨)은 패배하여 알바니아(Albania)로 쫒겨가게 되었으며 그리스는 민주정부(民主政府)를 수립(樹立)하였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는 세르비아(Serbia), 불가리아(Bulgaria), 루마니아(Romania) 등의 주변 공산권 국가와의 관계를 단절(斷切)하고 미국과 동맹을 맺고 나토(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에 가입하였습니다.
2. 그리스의 경제성장
이러한 정치적 상황속에서 그리스는 미국의 지원(支援)을 받으면서 고도의 경제성장을 이룩하게 되었습니다. 해운업(海運業)과 관광산업(觀光産業)도 이때에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 성장에 함께 빈부격차(貧富隔差)가 심해지고 보수정권(保守政權)의 부패가 나타나는 등 부정적인 요소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7년 총선은 좌파정권(左派政權)이 유리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미국은 반공주의자(反共主義者) 군인이었던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1919~1999)를 지원하여 군사정권(1967.4.-1973.11.)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는 강력한 권력으로 정치를 안정시키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러나 농업, 해운업, 관광업은 성장하였지만 지리적, 사회적 여건으로 인해 제조업(製造業)은 성장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소기업(小企業)과 자영업(自營業)은 성장하고 제조업을 중심으로 하는 대기업(大企業)은 성장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3. 진보정권의 집권
요르요스 파파도풀로스는 군주제(君主制)를 폐지하고 공화국(共和國)으로 바꾸고 직접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지만 경제적 악화와 정치적 불안은 더 커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은 반정부운동(反政府運動)을 시작하였습니다. 군사정권은 이를 진압하려 하였지만 여론은 더 악화되었고 요르요스는 실권하고 감옥생활을 하던 중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는 보수성향의 신민당과 진보 성향의 사회당이 창당되면서 양당체제가 구축(構築)되었습니다.
군사정권 종식(終熄) 후 처음에는 신민당이 집권하였으나 1973년 석유파동으로 경제성장이 멈추자 신민당은 힘을 잃었고 결국 사회당이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사회당은 1981년 정권을 잡은 후 유럽연합(European Union)에 가입하고 민주 국가로서 자리를 잡으면서 2004년까지 집권하였습니다.
사회당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유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올림픽 준비로 막대한 비용을 사용하고 탈세(脫稅)와 부정행위가 심하여 그리스 재정(財政)은 악화되었습니다.
4. 구제금융을 신청한 그리스
2004년 총선에서 신민당이 정권을 잡았으나 2009년에 다시 사회당이 정권을 잡게 되었고 IMF(International Monetary Fund)에 구제금융(救濟金融)을 신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뒤에 새로 나타난 급진좌파연합(Syriza)이 정권을 잡고 알렉시스 치프라스(Alexis Tsipras)가 2015년에 그리스 총리에 취임하게 되었습니다.
신용평가회사는 그리스 등급을 채무불이행을 의미하는 디폴트( default)등급으로 강등하였습니다. 2018년 8월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연합(EU)은 그리스 졍제관리체제를 종결했습니다.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다음백과
그리스 개황(외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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