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역사
오늘날 이스라엘 지역의 고대 지명(地名)은 가나안( Canaan)입니다. 이 지역은 고대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 사이에 위치하여 계속적으로 여러 민족의 침입을 받았으며 기원전 13세기까지 주로 이집트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짧은 기간 나라를 세우고 성전(聖殿)도 쌓았지만 내부 분열과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자기 나라 없이 여러 나라에 흩어져 수천 년의 세월을 핍박(逼迫)을 받으면서 살아왔습니다.
1948년 그들은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하고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전쟁을 계속해 왔으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주변 국가와의 사이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1. 3대 종교의 성지 예루살렘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 3대 종교의 성지(聖地)로 일컬어지는 예루살렘(Jerusalem)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수도입니다.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은 사해(死海)로부터 25km, 지중해 연안으로부터 55km 떨어져 있으며 높이 790m 가량의 팔레스타인 중앙산맥의 분수령 위에 있습니다. 동(東)예루살렘에는 역사적인 유적과 성지가 많습니다. 특히 통곡의 벽(유대교), 성묘(聖墓)교회(그리스도교), 오마르사원(이슬람교)이 유명합니다.
예루살렘의 동부는 요르단령(領)이며, 서쪽은 1948년부터 이스라엘령(領)이 되었고, 1950년에는 이스라엘의 수도가 되었으며 이스라엘의 행정상 수도는 텔아비브입니다. 유대교도,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가 성지(聖地)로 받들고 있는 동쪽 지역은 1967년 6월 중동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의 점령지가 되었습니다.
2. 성서 시대(기원전 17세기 ~ 6세기)
성서(聖書)에도 기록되어 있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기원전 17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아브라함은 가족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 Canaan)으로 가서 정착(定着)하였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기근(飢饉)으로 인해 야곱은 그 땅에 머물기가 어려워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애굽의 박해는 심하였으며 이러한 수난(受難)의 역사는 400년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기원전1446년에 이르러 하느님으로부터 십계명(十誡命)을 받은 모세에 의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으로부터 탈출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바로 가나안에 정착하지 못하고 40년의 방랑 생활 후에야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340년의 사사시대(士師時代) 후에 이스라엘은 통일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다윗왕은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겼으며 솔로몬왕은 예루살렘에 성전(聖殿)을 건설하였습니다.
하지만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 왕국은 북쪽은 이스라엘과 남쪽은 유다로 분열되었습니다.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되고, 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에게 멸망하였습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민족은 또다시 나라 없는 민족으로 여러 나라에 떠돌아다니게 되었습니다. 이 때부터 흩어져 떠돌아 다니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디아스포라(Diaspora)란 별칭이 붙었으며 포로가 된 유다인은 유대인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3. 페르시아와 그리스 시대(기원전 536~142)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은 바빌로니아 왕국을 정복한 페르시아의 배려(配慮)로 인해 이스라엘 지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다가 알렉산더 제국의 지배를 받았지만, 기원전 129년에는 유대 국가인 하스모니아 왕조가 세워져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번영을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4. 로마제국의 지배(기원전 63 ~ 기원후 313)
기원전 63년에 로마 장군 폼페이우스가 예루살렘을 점령함으로써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로마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임명된 헤롯1세는 성전을 다시 짓고 요새(要塞)를 세우기도 했지만, 대중의 신임은 얻지 못했습니다. 이 때에 베들레헴에서는 예수(Jesus Christ)가 탄생하였고, 그를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초기 기독교(基督敎)가 발생하였습니다.
헤롯 1세가 죽은 뒤 이스라엘 땅을 직접 통치한 로마가 유대인의 관습과 종교를 인정하지 않자 유대인들은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하지만 유대인의 반란은 모두 진압되었으며 로마는 이스라엘 땅의 이름을 유대인이 싫어하는 팔레스티나족의 이름을 딴 팔레스타인으로 바꾸고 유대인들을 추방(追放)하였습니다.
5. 비잔틴 지배(313~636)
395년에 로마 제국은 동·서로 나뉘게 되었고 팔레스타인 지역은 동로마 제국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의 동로마 제국을 비잔틴 제국이라고도 합니다. 비잔틴 제국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公認)하고 예루살렘, 베들레헴, 갈릴리 등에 많은 교회(敎會)와 수도원(修道院)을 세웠습니다.
6. 중세시대(636~1516)
7세기경에는 이슬람교 세력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그 뒤로 약 4백 년 동안 아랍 왕조의 지배가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에 많은 이슬람교 사원(寺院)이 예루살렘에 세워졌으며, 예루살렘은 이슬람교의 성지(聖地)가 되었습니다.
이에 유럽 기독교 국가들은 예루살렘을 아랍으로부터 되찾기 위해 십자군 원정(十字軍遠征)을 하였습니다. 제1차 십자군은 1099년에 예루살렘을 점령하였지만 13세기까지 여덟 차례나 이어진 십자군 원정은 결국 실패로 끝났습니다
하지만 이 원정으로 유럽에서 예루살렘까지의 교통로(交通路)가 열려서 많은 유대인들이 그 길을 따라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1291년에 이르러 이집트에서 일어난 맘루크 왕조는 십자군을 몰아내고, 팔레스타인 지역과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십자군이 세운 각지의 교회들을 파괴하고 많은 이슬람 사원과 학교를 지으며 이슬람 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정치적 혼란과 빈곤, 질병 등으로 쇠퇴하여 1517년에 오스만 제국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7. 오스만 제국 지배(1517~1917)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시기에는 유대인에 대한 핍박(逼迫)이 줄어들어, 유대인의 이주(移住)가 늘어났습니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철도와 도로가 정비되어 대륙과 대륙을 잇는 지리적 이점이 살아났고, 1880년 이후로 더 많은 유대인들이 이주해 와 1500년대에 5천 명에 불과했던 팔레스타인 지역의 유대인은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때 8만 5천 명 정도 되었습니다.
8. 영국의 통치(1918~1948)
제1차 세계 대전(1914.7.28 ~ 1918.11.11)의 패배로 오스만 제국은 해체되었고, 1917년 승전국(勝戰國) 중 하나인 영국이 국제 연합(國際聯合)으로부터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통치권(統治權)을 위임받았습니다. 1917년 영국이 밸푸어 선언으로 유대인의 국가 건설을 지지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1930년대에는 나치스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더욱 많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으로 이주하지만, 먼저 이 땅에 살고 있던 아랍인과 유대인 사이에 땅의 소유와 성지 관리 등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났습니다.
9. 이스라엘 건국과 독립 전쟁, 시나이 전쟁(1948~1967)
① 이스라엘 독립전쟁(제1차 중동전쟁 1948.5.15 ~ 1949.3.10)
영국의 위임 통치(委任統治)가 끝난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은 건국을 선언하였습니다. 이에 반발한 주변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에 대해 전쟁을 선포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아랍 연합국측이 유리하였으나 미국이 이스라엘을 적극 지원하면서 이스라엘은 결과적으로 더 많은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②시나이 전쟁(제2차 중동전쟁 1956.10.29 ~ 1956.11.7)
1956년 7월 이집트는 수에즈 운하(運河)를 국유화(國有化)하고 거기서 생기는 수입으로 댐 공사를 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동안 수에즈 운하 운영은 영국과 프랑스가 주도해 왔습니다. 이에 영국과 프랑스는 이스라엘을 이용하여 이집트를 응징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참가하는 UN군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10. 6일 전쟁 및 욤키푸르 전쟁(1967~1977)
① 6일전쟁(제3차 중동전쟁 1967.6.5 ~1967.6.10)
6일전쟁은 제3차 중동전쟁으로 시리아와 이스라엘 간의 충돌로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비무장지대로 설정된 골란고원 일대에 농작물을 경작(耕作)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 시리아의 분노를 촉발(促發)시켰습니다. 이 문제로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의 원조를 받는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② 욤키푸르 전쟁(제4차 중동전쟁 1973.10.6~1973.10.26)
제4차 중동전쟁인 욤키푸르 전쟁은 이집트와 시리아가 과거 3차례 중동전쟁에서 잃었던 영토 회복을 위해 1973년 10월 6일 수에즈 전선과 골란고원의 양 전선에서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쟁 또한 이스라엘에게 유리한 결과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11. 리쿠드당의 부상과 제1차 레바논 전쟁(1977~1987)
1977년 의회 선거로 30년에 걸친 노동당의 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자유주의적이고 중도적인 정당들이 제휴한 리쿠드 연합이 집권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1943년 11월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레바논에서는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 세력 사이의 대립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1975년 4월 레바논에 유입된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의 무장세력(武裝勢力)과 레바논 기독교 민병대(民兵隊) 간의 충돌로 총격전이 생겼으며 이로 인해 레바논 내전(內戰)이 시작되었습니다.
레바논 내전(1975 ~ 1990)은 시리아와 이스라엘 등의 외부 세력이 개입함에 따라 국제화(國際化)된 내전의 양상으로 전개되었으며, 1989년의 평화협정을 거쳐 1990년에 공식 종료되기까지 약 15년간 지속되었습니다.
12. 제1차 인티파타(1987~1991)
1987년 12월 이스라엘군 지프차에 치여 팔레스타인 국민 4명이 사망하자 이스라엘에 대한 폭력 투쟁인 인티파다(Intifada)가 발생하였습니다.
※인티파다(Intifada) : 봉기(蜂起) 반란(叛亂)을 뜻하는 아랍어로 팔레스타인인들의 반(反) 이스라엘 투쟁을 통칭하는 말
13. 노동당의 부활(1992~1996)
1992년에는 노동당과 군소 좌파 정당들의 연립정부가 탄생했는데 1995년 라빈 총리가 극우파 이스라엘 청년에게 살해되고 1996년 새로운 정부를 위한 선거가 실시되었습니다.
14. 리쿠드/노동당 경합시기, 제2차 인티파다(1996~2001)
직선제 선거로 벤야민 네탄야후가 총리에 당선됨으로써 다시 리쿠드당이 연립내각을 구성하였습니다. 1999년에는 단일 이스라엘 정당 대표(좌파/중립)인 에후드 바락이 총리로 선출되어 연립내각을 구성했으나 2000년 12월 사임하였습니다.
2000년 9월에는 제2차 인티파다가 촉발되어 이스라엘측 1,000여명, 팔레스타인 3,0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15. 샤론 총리 및 카디마당 집권, 제2차 레바논 전쟁(2001~2008)
2001년 2월 리쿠드당 대표 샤론이 총리로 선출되었고 주요 정당들을 포함하는 연립내각을 구성하였습니다. 샤론 총리는 2005년 11월 분리정책(Disengagement Policy)에 대한 당내 반대세력에 부딪히자, 리쿠드당을 탈당하여, 중도성향의 신당 카디마(Kadima, ‘전진’의 의미)를 창당하였으나 2006년 1월 런 뇌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006년 3월 총선에서 예후드 올메르트가 주도하는 카디마가 제1당이 되어 2006년 5월 노동당 등과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2006년 7월 남부 레바논을 장악하고 있던 헤즈볼라 세력이 이스라엘군 부대를 공격함으로써 제2차 레바논 전쟁이 발발하였습니다.
16. 네탄야후 총리의 장기 집권(2009.3.31~2021.6.10)
2008년 9월 올메르트 총리는 부정부패(不正腐敗) 혐의(嫌疑)로 사임(辭任)하였습니다. 2009년 2월 총선을 통해 보수 성향(保守性向)의 정당이 주도하는 가운데 좌익 성향(左翼性向)의 노동당이 참여하는 연정(聯政)이 구성되었고 네탄야후 리쿠드당 대표가 총리로 선출되었습니다. 네탄야후 총리는 이후 6선의 장기집권(長期執權)에 성공하여 2021년 6월 13일까지 총리로 재임(再任)했습니다. 다음 총리는 야미나 당(黨)의 나프탈리 베네트( Naftali Bennett )가 선출되었습니다. 그는 2021년 6월 13일부터 2022년 7월 1일까지 이스라엘 총리직을 역임(歷任)했습니다. 2022년 현재 이스라엘 총리는 예시 아티드 당(黨)의 야이르 라피드입니다.
자료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이스라엘의 역사 (202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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