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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역사(世界歷史)

로마제국의 역사

by 이코노미106 2023.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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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역사

 

 

로마제국(Roman Empire)B.C8세기에 이탈리아 반도(半島)로마(Rome)에서 시작하여 지중해(地中海)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까지 막대한 규모의 제국(帝國)을 형성하며 초강대국(超强大國)으로 세력을 떨쳤습니다.

로마제국 최대의 영토 확장은 2세기에 이루어졌으며, 이때 제국은 북쪽으로는 영국과 독일지역, 남쪽으로는 지중해 지역, 동쪽으로는 유럽 및 아시아 일부를 통치하였습니다.

이러한 로마제국의 특징은 군사적으로 강력하며, 잘 조직된 행정 체제(行政體制), 법체계(法體系), 도로망(道路網), 통일된 통화(通貨) 등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은 로마문화를 세계로 전파(傳播)하였으며, 유럽 역사와 문화의 기반(基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의 안정성(安定性)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약해지며, 내부적인 문제, 외부 침략, 정치적 분열 등의 요인으로 395년에 동·서로마로 분리(分離)되었고 서로마는 476년에 게르만족에 의해 붕괴되었고 동로마는 1453년에 오스만제국에 의해 멸망함으로써 2200여 년에 걸친 로마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 로마의 건국(B.C8세기)

 

로마의 건국은 전설적인 이야기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트로이 전쟁(B.C12세기)의 영웅이었던 아이네이아스( Aeneas)의 후손(後孫) 로물루스(Romulus)레무스(Remus) 형제는 어릴 때 숲 속에 버려져서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습니다.

 

늑대의 젖을 먹는 로물루스와 레무스

 

그들은 숲에서 자라면서 사냥과 전투를 익혔습니다. 어느 날 그들은 지금의 로마 지역인 팔라틴 힐(Palatine Hill)에 도착하여 도시를 건설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건설 과정에서 로물루스와 레무스 사이에 갈등이 생겨 전투가 벌어졌고 결국 로물루스는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혼자서 도시를 건설하였고 자신의 이름을 따서 로마(Rom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로물루스는 법률(法律)과 제도(制度)를 개발하였으며, 로마를 강력하고 발전된 도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 고대 로마왕국(B.C753~509)

 

로마 건국 초기는 로물루스(Romulus)를 비롯한 전설적인 7명의 왕들이 통치(統治)한 시대입니다. 이 시기는 로마의 정치, 사회, 법률 등 많은 측면에서 발전을 이루었으며, 로마 제국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 로마공화정(B.C509~27)

 

B.C509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B.C545~509)는 로마의 마지막 왕인 타르퀴니우스 슈페르부스를 몰아내고 공화정(共和政)을 선포함으로써 로마는 공화정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대 로마 전반기에 행해진 공화 정치는 군대를 지휘하거나 행정을 담당하는 1년 임기의 두 명의 집정관(Consul)300명의 귀족으로 구성되어 집정관에 대한 자문을 담당하고 권력의 주심 역할을 하는 원로원(Senatus), 그리고 입법, 재판 및 국가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민회(Comitia)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 공화정은 귀족 중심의 정치 체제로 이루어져 있었고 평민의 참정권(參政權)은 인정되지 않아 귀족과 평민이 대립하게 되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로마 국가는 중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그리스 식민도시(植民都市)들을 차례로 복속(服屬)시켜 이탈리아 반도(半島)의 지배자가 되었습니다. B.C. 2~3세기경에는 카르타고(Carthago)와 치른 3차례의 포에니전쟁마케도니아와의 전쟁을 통하여 로마는 지중해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1차 포에니 전쟁

 

2차 포에니 전쟁

 

그러나 1차 삼두 정치(三頭政治)2차 삼두 정치를 거쳐 기원전 27아우구스투스가 사실상의 제정(帝政)을 실시함으로써 공화정(共和政)은 끝이 나게 되었습니다.

 

. 로마제국(B.C27~A.D395)

 

B.C. 31악티움해전(Battle of Actium)에서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힘을 합친 연합군을 물리친 옥타비아누스는 황제에 오르게 되었고 이로써 로마제국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존엄한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아우구스투스(Augustus)라는 칭호와 함께 황제에 오른 옥타비아누스(Octavianus)와 뒤를 이은 로마 황제들은 로마 제국을 광범위하게 확장시켰습니다.

로마제국이 성립된 이후 로마의 평화(Pax Romana)가 이루어지던 시대라는 5현제(五賢帝)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5현제는 네르바(Nerva, 96~98), 트라야누스(Trajanus, 98~117), 하드리아누(Hadrianus, 117~138),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138~161),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 등의 다섯 명의 황제를 말하는데 이 시대에 .로마제국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 이르는 최대의 영토를 획득하였습니다.

5현제 시대 이후 군인 출신 황제들이 출현하고 암살(暗殺)과 내전(內戰) 등으로 나라는 혼란해졌습니다. 이러한 로마제국을 안정시키기 위해 디오클레티아누스(Diocletianus, 재위284~305) 황제는 286년에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밀라노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293년에는 제국을 4개로 나누어 2인의 황제와 2인의 부황제가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였습니다.

306년에 황제에 오른 콘스탄티누스 1313년에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公認)하고 330년에는 비잔티움으로 또다시 수도를 옮겼습니다.

395테오도시우스 1세(재위 379395)가 사망하자 그의 두 아들은 제국을 동부와 서부로 나누어 각자 황제가 됨으로써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으로 분리되었습니다

 

. 서로마제국(B.C395~A.D476)

 

395테오도시우스 1의 둘째 아들인 호노리우스(재위393423)가 서방의 황제로서 서로마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서로마제국은 동로마제국에 비해 국력이 약하여 내외로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476년 게르만인 오도아케르(Odoacer)에 의해 멸망하였습니다.

 

. 동로마제국(B.C395~A.D1453), 비잔틴 제국

 

동(東)로마제국비잔틴 제국 또는 비잔티움(Byzantium) 제국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콘스탄티누스 1세(재위 AD 306~337)가 지금의 이스탄불(İstanbul)지역인 비잔티온에 제2의 로마 수도를 건설하고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의미로 콘스탄티노폴리스(Constantinopolis)라고 이름 붙였는데 동·서로마로 분리분되면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은 동로마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역사기록에 있어서 편의상 동로마제국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비잔티움 제국은 정치적으로 고대 로마의 이념과 제도를 이어받고, 종교적으로 그리스도교를 국교(國敎)로 삼았습니다.

언어, 문화, 생활 면에서는 그리스의 전통을 많이 따랐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를 중심으로 동쪽 지중해 연안의 여러 섬들을 포함한 중앙집권적(中央集權的) 국가로 성장하였습니다.

 

로마제국의 발전

 

특히 유스티니아누스 1세(재위 527~565)는 이민족이 차지하고 있던 옛 로마 제국의 영토를 다시 회복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로마법을 모아 로마법 대전(Roma法大全)을 편찬했으며 비잔틴 건축으로 유명한 성 소피아 성당을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에 세웠습니다.

그 후 헤라클리우스(재위 610~641) 황제 시대에는 왕권(王權)이 안정되었으며 동로마제국의 최고 전성기(全盛期)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12세기 이후에 접어들면서 여러 민족간의 갈등, 종교적 분열, 이민족의 침입 등으로 제국은 쇠락(衰落)을 거듭하여 1453오스만제국에 의해 수도인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陷落)되면서 동로마제국은 멸망하였습니다.

 

오스만제국의 최대영역

 

자료출처: 다음백과,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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